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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사람들_니콜라스 카

서재

by hkzeze 2016. 2. 13.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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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의 ‘읽기’


오래된 친구들과 술을 먹다보면, 이야기 주제는 대부분 고등학생 시절을 회상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 선생님 노처녀 히스테리 장난 아니었어”와 같은 대화를 하며 깔깔대다가, 꼭 누군가 얘기한다.

“아,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친구들과 달리, 나는 학창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거의 없다. 그때 나는 허약한 몸 때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쓰러져, 누워서 하는 일이라곤 손에 집히는 대로 책만 읽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학교에 오래 있지도 못했고, 친구를 사귈 기회도 적어서 학창시절은 나에게 그다지 좋은 기억이 아니다. 그런데 오로지 낙이라곤 책뿐이었던 그때로, 나는 왜 돌아가고 싶을까.

5년이 지난 후, 나는 많이 달라져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으로 팟캐스트를 켜, 조간 뉴스를 듣고 회사에서는 컴퓨터로 포털 사이트와 업무 보는 것을 반복한다. 점심시간에는 밥을 먹으며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차례로 들어가고, 뉴스 속보를 확인한다. 인상적인 사설이나 기삿거리는 인쇄해 놓지만 다시 읽는 법은 거의 없다. 이런 생활을 아무 의심 없이 반복하다가 최근, 나에게서 뚜렷한 이상 증상을 발견했다. 어떤 문장을 읽을 때 그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눈은 이미 문장의 마지막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 문장을 두세 번씩 꼭 다시 읽어야 했다.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나날이 발전하는 기기로 하루에도 어마어마한 정보를 접하는데, 왜 나는 거꾸로 퇴화된 느낌일까. 그 해답은 이 책의 202쪽에 니콜라스 카가 인용한 읽기 연구자 겸 컨설턴트인 제이콥 닐슨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읽지 않는다.”

제이콥 닐슨의 대답은 꽤나 충격적이라, 나는 곧바로 ‘스마트폰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회사에서는 주어진 일로만 컴퓨터를 사용하고, 그 외에 모든 이동시간, 휴식 시간에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일어나자마자 적막 속에 출근 준비를 했다. 지하철 안에서는 가져온 신문을 읽었다. 다들 각자 귀에 꽂은 소리에 집중하느라 지하철은 고요했으나 집중해서 글 읽기는 힘들었다. 점심을 먹고 동료들과 카페에 가서 뉴스 얘기를 하다가, “국무총리 후보자가 청문회에 가야한다는 기사가 있더라”라며 신문에서 본 내용을 이야기 하려는데, “그 사람 사퇴했다고 아까 전에 속보 떴어”라는 팀장의 말에 머쓱해졌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나와의 싸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퇴근을 하고 돌아와 적막 속에서 책을 읽는데, 최소 삼십 번 이상은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에 손이 갔다. 책의 반 이상이 넘어가고 몇 십 번의 멈칫거림 끝에, 비로소 온전히 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저녁 8시부터 시작된 나의 내적 갈등은 정확히 오전 12시가 되자마자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끝났다. 정말 오랜만에 책을 한번에 다 읽었다는 뿌듯함과, 무엇인지 모를 전율까지 느꼈다.
니콜라스 카는 내가 했던 ‘스마트폰 다이어트’와 비슷한 변화를 시도했다. 그는 나보다 더 강제적인 방법으로 네트워크로부터 벗어나려했다. 그러나 실패로 끝났다. 나는 그와 달리 한번에 전체적인 삶을 바꾸기 보다는, 짧은 시간만이라도 서서히 벗어나보고자 했다. 그러나 결과는 니콜라스 카와 비슷했다. 나는 12시가 되자마자, 잠깐 느꼈던 전율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곧바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고, 트위터에 곧장 들어가 수많은 트윗들을 단숨에 읽었다. 아니 훑었다. 나와 니콜라스 카는 실패한 것일까. 우린 더 이상 깊은 사고를 했던 ‘이전의 뇌’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일까.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에 가면 스마트폰으로 도착시간을 검색하고, 끊임없이 새로고침을 누르고 있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도착 시간을 안다고 해도 오고 있는 버스나 지하철을 막을 수도, 더 앞당길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계속해서 새로고침을 누르는 이유는, 그저 정보 속에 몸담고 있는 것이 심정적으로 편안해서, 그리고 그 속에서 나오면 느끼는 약간의 불편함이 두려운 것은 아닐까. 그 정보가 딱히 몰라도 되는 것이라도 말이다.
결국 나는 다시 인터넷 속에 들어왔다. 펜 대신 스마트폰을 잡고,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내렸다 반복한다. 그러나 아주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그 동안 잃었던 고요함과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펼쳐지는 잔상, 마우스 커서가 아닌 손가락으로 짚으며 읽어 내려가는 활자들의 소중함을 다시 느꼈다. 그리고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였던 나의 일상들에 잠시 제동을 걸고, 깊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며칠 전 친구들과 술을 먹다가 “아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라는 한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보다는 스마트폰을 끄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야, 우리 잠깐만 그때로 돌아가 보자” 

PS. 2014.07.07 에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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